경복궁 - 수정전, 태원전, 재수합, 집경당, 함화당 등
수정전(修政殿)
수정전은 경회루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세종 때는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세종 28년(1446) 9월 이곳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기도 한다.
세조 때는 예문관(藝文館)으로도 쓰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고종 4년(1867) 재건된 후 군국기무소(軍國機務所) 및 내각(內閣)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일제시기에는 박람회장으로 쓰이는 수모를 겪다가, 1966년 10월 이곳에 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민속관(民俗館)'을 우리 손으로 개관하기도 했었다.
현재 수정전은 수정전 건물과 월대만 남아 있지만, 190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의하면 수정전 주변이 행각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수정전 건물의 좌우측으로 다시 복도를 내어 수정전 주변 행각과 바로 연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정전 주위 행각은 사정전 천추전 방향의 행각과 복도로 연결했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기에 들어와 일제는 수정전 주위의 행각을 모두 철거하고 만다.
현재는 수정전 건물 좌우측에는 당시에 복도를 연결했던 흔적만 남아 있다. 한편 수정전은 건물의 간수(間數)로 따졌을 때, 현존하는 경복궁 내 전각 중 규모가 큰 건물에 해당한다.
정면 10간 측면 4간의 총 40간 규모의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발췌 한국의 재발견 www.palace.or.kr/)
수정전 전경 - 예전엔 행각과 주변 많은 여타 전각으로 둘러쌓여 있어야 하지만 뒤로 바로 경회루가, 앞은 아무것도 없다.
예전엔 담으로 둘러쳐져서 수정전에서 경회루를 볼 수도 없었다는데...
수정전 근정전 쪽에서 본...
수정전 전경(영추문에서 본...)
수정전 현판과 월대 계단 사이의 돌 받침대(노둣돌구조를 한다)
수정전
수정전 뒷 모습 굴뚝
재수합(齋壽閤)
경복궁 민속박물관을 향하다 보면 한 채의 건물이 홀로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재수합이다.
재수합이 이곳에 세워진 것은 고종 2년(1865)∼고종4년(1867)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 마당 자리는 일제에 의해 모두 헐려나가기 전까지 내전 건물이었던 만경전(萬慶殿)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재수합은 남쪽에 위치한 부속건물로써 왕실가족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면 7간 측면 2간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재수합
태원전(泰元殿)
경복궁의 서북쪽 일대는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 영전(靈殿) 같은 제사와 관련된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빈전은 왕실에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관을 모셔두는 곳이고 혼전은 종묘에 모실 때까지 만 2년 동안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영전은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원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이다. 나중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도 쓰였다.
이곳은 궁 안 외진 곳이어서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 태원전 건물은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지금 옛 모습대로 건물이 복원되었다. 건물은 제사지내는 집답게 단정하고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경회루 북쪽 만시문 쪽에서 바라본 태원전 일곽
경회루에서 본 태원전과 신무문 쪽에서 본 태원전 외곽
태원전 (사진 경복궁 홈피서 발췌)
태원전 내 숙문당과 태조 이성계 어진(사진 경복궁 홈피 발췌)
장고(醬庫)
궁중에서 사용하는 독과 항아리를 놓아두던 궁중의 장독대이다. 경복궁에는 이곳 외에 함화당, 집경당의 동편에 한 곳의 장고가 더 있엇다. 장고에는 주로 장 종류와 술, 물, 젓갈 등을 담아 쓰던 옹기들이 많았고 장고를 관리하던 상국을 '장고마마'라 불렀다. 지금의 옹기들은 2007년 전국 여러 곳의 옹기를 모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장고 정문과 외곽 전경
겨울 눈 왔던 날 장고 전경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향원정으로 향하다 보면 향원정 바로 앞에 함화당과 집경당을 볼 수 있다.
이곳 함화당과 집경당 앞은 전엔 매점과 공터로 되어있지만, 흥복전(興福殿) 등 내전의 전각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금은 한창 복원공사 중이다..함화당과 집경당은 3간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 4년(1867)∼고종 10년(1873)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함화당과 집경당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북궐도형>에 의하면 함화당과 집경당을 잇는 복도 사이에는 샛담을 두어 계명문(啓明門)이란 일문(日門)은 남쪽 담의 문으로, 영춘문(迎春門)이란 월문(月門)은 북쪽 담의 문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변에 담장을 두어 여러 채의 부속 건물과 문을 두었음도 알 수 있다.
고종이 향원정 뒤편에 건청궁(乾淸宮)을 만들어 머물 당시에 이곳 함화당과 집경당에서 외국사신을 접견했다고도 한다.
복원공사 중인 집경당 및 함화당 터
2008년 1월 한창 공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