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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성 청룡사 소개

안성 청룡사 소개


안성 청룡사 소개 안성 안성역 안성부동산 안성시 안성터미널

 

           안성 청룡사 소개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위치한 청룡사는 아무리 가물어도

항상 물이 찰랑 찰랑 넘칠 듯한 청룡저수지를 지나 노송이 우거진 서운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데, 1900년대부터 등장했던 남사당패의 근거지로 더 잘 알려진 사찰이다.

 

 

 

 

 

 

 

 

 

 

 

 

 

 

 

 

 

 

 

 

 

청룡사 진입로

 

 

 

 

 

 

 

 

 

 

 

 

 

 

 

 

 

 

 

 

일주문앞 고목

 

 

 

 

 

 

 

 

 

 

 

 

 

 

 

 

 

 

 

 

일주문앞 계단

 

 

 

 

 

 

 

 

 

 

 

 

 

 

 

 

 

일주문 현판

 

 

 

 

 

 

 

 

 

 

 

 

 

 

 

 

 

 

 

 

 

일주문 안쪽

 

 

 

 

 

 

 

 

 

 

 

 

 

 

 

 

 

 

 

 

일주문 안쪽과 요사채

 

청룡사는 원래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세워 대장암(大藏庵)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웅전

 

 

 

 

 

 

 

 

 

 

 

 

 

 

 

 

 

 

 

 

 

 

 

 

 

 

 

 

 

 

대웅전앞

 

 

 

 

 

 

 

 

 

 

 

 

 

 

 

 

 

 

 

 

 

 

 

 

 

 

 

 

 

 

대웅전 기단과 석탑

 

 

 

 

 

 

 

 

 

 

 

 

 

 

 

 

 

 

 

대웅전 내부

 

 

 

 

 

 

 

 

 

 

 

 

 

 

 

 

 

 

 

 

 

대웅전의 휘여진 기둥

 

 

 

 

 

 

 

 

 

 

 

 

 

 

 

 

 

 

 

 

 

대운전의 휘여진 기둥

 

 

 

 

 

 

 

 

 

 

 

 

 

 

 

 

 

 

 

 

 

대웅전 뒷 모습

 

 

 

 

 

 

 

 

 

 

 

 

 

 

 

 

 

 

 

대웅전외벽의 십우도

 

 

 

 

 

 

 

 

 

 

 

 

 

 

 

 

 

 

 

 

 

대웅전 앞 주변

 

그 후 공민왕 13년(1364)에 나옹화상이 크게 넓히면서 청룡사라 이름을 고쳤는데 청룡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명부전

 

 

 

 

 

 

 

 

 

 

 

 

 

 

 

 

 

 

 

 

명부전 내부

 

 

 

 

 

 

 

 

 

 

 

 

 

 

 

 

 

 

 

 

 

명부전 시왕상

 

 

 

 

 

 

 

 

 

 

 

 

 

 

 

 

 

 

 

 

 

산신각

 

 

 

 

 

 

 

 

 

 

 

 

 

 

 

 

 

 

 

 

 

산신탱

 

 

 

 

 

 

 

 

 

 

 

 

 

 

 

 

 

 

 

 

 

관음전 전경

 

 

 

 

 

 

 

 

 

 

 

 

 

 

 

 

 

 

 

 

 

관음전

 

 

 

 

 

 

 

 

 

 

 

 

 

 

 

 

 

 

 

 

 

관음보살좌상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는 광대들이 안성땅을 지나다가 남사당패와 한바탕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사당패의  애환을 스다듬어 주었던 곳이 청룡사 부처님 품안이다.

 

 

 

 

 

 

 

 

 

 

 

 

 

 

 

 

 

 

 

 

 

 

범종각 원경

 

 

 

 

 

 

 

 

 

 

 

 

 

 

 

 

 

 

 

 

범종각

 

 

 

 

 

 

 

 

 

 

 

 

 

 

 

 

 

 

 

 

 

범종

 

 

 

 

 

 

 

 

 

 

 

 

 

 

 

 

 

 

 

 

 

목어

 

그래서 그런지 10여채의 남사당네 마을과 청룡사는 개울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근하게 마주보고 있다. 

 

 

 

 

 

 

 

 

 

 

 

 

 

 

 

 

 

 

 

 

 

요사채

 

 

 

 

 

 

 

 

 

 

 

 

 

 

 

 

 

 

 

 

 

요사채

 

 

 

 

 

 

 

 

 

 

 

 

 

 

 

 

 

 

 

 

 

장독대

 

청룡사의 전각들도 웅장한 대웅전을 제외하고 다른 요사체들은 마치 개울건너 남사당네 집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대웅전앞 삼층석탑

 

 

 

 

 

 

 

 

 

 

 

 

 

대웅전좌측

 

 

 

 

 

 

 

 

 

 

 

 

 

 

 

 

대웅전앞


남사당은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부터 추수가 끝나는 가을까지
마을을 떠나 천지사방을 떠돌며 살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둥지로
찾아 드는 새처럼 이 마을로 들어 온다.

 

산신각과 명부전

 

 

 

 

 

 

 

 

 

 

 

 

 

 

 

 

 

청룡사 쪽문


 
“안성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가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를 이끄는 여장부이다.
 
이 노래가 남사당 바우덕이의 일면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노래처럼 실제로 돈이 쏟아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남사당 풍물놀이

 

 

 

 

 

 

 

 

 

 

 

 

 

 

 

 

 

남사당 풍물놀이
 
청룡사에서 내준 신표를 높이 들고 봄부터 신명나게 떠돌기는 하였으나 막상 늦가을이 되면
넉넉지 못한 돈주머니에 겨우살이 걱정이 앞서자 갑자기 쓸쓸해지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안성땅에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남사당 6마당(풍물놀이)

                                 

겨울이면 청룡사에서는 천대 받으며 어렵사리 옆에서 둥지를 틀고 생존을 꾸려가는 남사당패에게 다소의 일거리를 제공하고 한식솔로 받아 들인다.

 

 

 

 

 

 

 

 

 

 

 

 

 

 

 

 

남사당 6마당(어름:줄타기)

 

반대로 이들은 영산대제.수룩제 등 청룡사에서 성대한 의식이 있을 때면 현란한 춤과 풍악을 공양하였다. 

 

 

 

 

 

 

 

 

 

 

남사당 6마당(덜미:꼭두각시 놀음)
 
청룡사 사적기에는 불사에 시주하는 일을 잊지 않았던 남사당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남사당 6마당(탈놀음:덧뵈기)
 
청룡사에서 500m 쯤 올라가면 바우덕이가 살던 곳인 불당골이

있는데, 지금은 7~8호쯤 되는 집에 남사당 후손들이 살고 있다.


 

남사당 6마당(버나 돌리기)


안성 남사당패들을 이끌던 팔사당집 가운데 여장부 바우덕이는
노래와 춤, 줄타기로 유달리 명성을 떨쳤다.

남사당 6마당(살판)

소고에 특히 능했던 바우덕이는 뭇 남자들이 한번만 만나봐도

소원이 없을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런 그녀가 방년21세로 젊디 젊은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양귀비를 능가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였지만, 역시 미인박명이라 ....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청룡사 개울에 뿌렸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역시 남사당으로 바우덕이가 죽을 당시 나이 마흔두 살의 장년이었다.

 

 어린 아내가 죽자 그는 매일같이 바우덕이와 놀던 바위에 올라가서 나발을 불고 장고를 치거나, 때로는 노래를 부르다가 울기도 했다.  몇 년을 그렇게 하다가 어느날 그 역시 홀연히 사라졌다.

 바우덕이는 100여년전에 이세상을 떠났으나 사람들이 그를 빗대어 지은 노래만큼은 지금도 안성땅에 전해지고 있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나온다!

 

 안성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가네!"


                                                      바우덕이의 묘 

 

 

                                               

 

 

 

 

 

 

 

 

 

 

 

 

 

 

 

 

 

 

 

 안성 청룡사 부도밭  

 

 

 

*보물제11-4호 안성 청룡사 동종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법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인비구의 작품세계와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물  제824호 청룡사대웅전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내부가구와 연등천장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내부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대웅전의 휘여진 기둥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다.

이 대웅전은 안쪽에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물  제1257호 청룡사영산회괘불탱(靑龍寺靈山會掛佛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괘불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있어 보인다.

이 그림은 효종 9년(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1302호 청룡사감로탱(靑龍寺甘露幀)

 

감로탱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린 불교그림이다.

 

 

 

 

 

 

 

 

 

 

 

 

 

 

 

 

 



이 그림은 가로 200㎝ 세로 237.5㎝ 크기이며 3단으로 화면구성을 하고 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7여래와 극락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 등을 그려 이상세계를 표현하였다.

 

특히 불·보살의 몸을 금가루로 칠했는데, 이는 다른 불화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의 중간에는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영혼이 극락으로 인도되길 기원하는 제사상을 차려 공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아래부분에는 속세의 여러 장면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당시 풍속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이 불화는 명료한 주제와 안정된 구도, 선명한 색채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중생제도와 유교의 효사상 강조에 따른 종교적 의의 또한 매우 크다.



*시도유형문화재 제124호(안성시)청룡사사적비(靑龍寺事蹟碑)

 

청룡사 절내의 부도밭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는 이 비는 청룡사의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 이름지어 창건하였고, 공민왕 13년(1364) 나옹왕사가 크게 중창(원래의 절을 고쳐 새롭게 함)하면서 절의 이름도 청룡사로 바꾸었다.

개석부분

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인데, 특이하게도 지붕돌 귀퉁이마다 네마리의 용이 머리를 대고 서려 있는 모습이다.

 

비문에는 나옹이 절을 중창할 때의 일과, 그 뒤 조선 숙종 때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중건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경종 원년(1721)에 세운 것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170호(안성시)안성청룡사금동관음보살좌상(安城靑龍寺金銅觀音菩薩坐像)

 

머리는 상투 모양으로 높게 묶은 후 양쪽 어깨로 몇 가닥씩 흘러내리게 하였다.

 

적당히 살이 올라있는 얼굴에는 눈·코·입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서 마치 깃처럼 한번씩 접혀진 상태로 자연스럽게 흘려내려 배 부분에서 큰 W자의 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하체로 내려온 옷은 양 무릎을 감싸고 무릎 아래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점, 얼굴과 신체의 단아하고 사실적인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의 보살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단순화된 구슬 장식 등에서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도무형문화재 제21호(안성시)안성남사당풍물놀이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민중놀이 집단으로 농악놀이·접시돌리기·재주넘기·줄타기·탈놀이·인형극 등 여러가지 놀이를 보여주고 거둔 돈이나 곡식으로 생활을 하는 걸립패의 성격을 지닌 전문연희집단이다. 

 

 

 

 

 

 

 

 

 

 

 

 

 

 


 


안성 풍물놀이는 남사당놀이의 한가지로 옛날에는 접시돌리기·재주넘기 등 여러 가지가 발달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주로 풍물놀이가 전수되고 있다.

풍물놀이

흔히 웃다리농악으로 불리며, 경기농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안성 풍물놀이는 청룡사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던 남사당패의 전통을 잇고 있다. 

조선 후기의 박우덕으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이원보, 김기복으로 이어지면서 해체되고 결성되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끈질긴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풍물놀이는 남사당 여섯놀이마당 중 첫째놀이이며, 웃다리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가락은 힘차고 섬세하며 느리고 빠른 가락을 고루 쓴다. 종합적인 판굿으로 수십 명의 인원이 각기 악기와 역할을 달리해 펼치는 놀이이며, 격렬한 몸 동작을 수반한다. 


안성 남사당풍물놀이는 웃다리가락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놀이이며,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자료 제59호 안성 청룡사 삼층석탑

 

청룡사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1층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4장의 판돌을 세워 4면을 이루게 한 뒤,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는데,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이 교대로 올려진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에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기단부

 

몸돌의 크기는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전체에 흐르던 비례감이 약간 흐트러지고 있다.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가벼움을 실었으며,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기단과 지붕돌 모서리의 일부가 깨져 나가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지긴 하였으나,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08/05/28 15:06 2008/05/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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